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성스러운 강
인도의 심장부에 자리한 바라나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수천 년 동안 힌두교 신자들에게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왔다. 특히 이곳을 가로지르는 갠지스강(Ganges River) 은 단순한 강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 구원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 신성한 공간이다. 갠지스강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의식 중에서도 가장 신비롭고 인상적인 것은 화장 의식(안타임 사스카르, Antyesti Sanskar)이다. 힌두교의 전통에 따르면, 사람이 죽은 후 갠지스강에서 화장되어 재가 강물로 흩날리면 영혼이 해탈(모크샤, Moksha)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바라나시에는 이러한 화장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화장터가 있으며, 그중에서도 마니카르니카 가트(Manikarnika Ghat)와 하리쉬찬드라 가트(Harishchandra Ghat)는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장소로 여겨진다.
전 세계에서 바라나시를 찾는 순례자와 여행자들은 "죽음을 축복하는 도시"라 불리는 이곳에서 생과 사가 공존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할 수 있다. 화장터에서는 하루 종일 시신이 불타오르고, 유가족들은 전통적인 장례 절차를 따라 조상을 마지막으로 배웅한다. 그러나 이곳의 분위기는 일반적인 장례식과 다르다. 슬픔보다는 해탈과 환생을 위한 의식이라는 점에서 더 경건하고 신성한 느낌이 강하다. 바라나시에서 이루어지는 갠지스강 화장 의식의 과정과 의미, 그리고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적 풍경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1. 갠지스강 화장 의식의 배경과 의미
1) 왜 갠지스강에서 화장하는가?
힌두교에서는 "삶과 죽음은 하나이며, 육신은 언젠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이 중에서도 바라나시는 신 시바(Shiva)의 도시로,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한 해탈을 얻는다고 믿어진다.
갠지스강 자체가 여신 '강가(Ganga)'로 숭배되며, 강물에 씻기면 죄가 정화된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화장 후 유골을 갠지스강에 흩뿌리는 것은 단순한 장례 절차가 아니라 영혼을 해탈로 인도하는 중요한 종교적 의식인 것이다.
2) 마니카르니카 가트와 하리쉬찬드라 가트
바라나시에는 많은 가트(Ghat, 강가에 계단식으로 조성된 공간)가 있지만, 화장터로 사용되는 곳은 두 곳뿐이다.
- 마니카르니카 가트 : 가장 중요한 화장터로, 하루에도 수십 구의 시신이 화장된다. 바라나시에서 화장되면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고 믿어,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죽기를 원한다.
- 하리쉬찬드라 가트 : 마니카르니카 가트보다 규모는 작지만, 똑같이 중요한 화장터이다. 이곳은 특히 전통 방식뿐만 아니라 전기 화장터 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2. 바라나시 화장 의식의 과정
1) 시신 운구와 준비 과정
사람이 죽으면, 가족들은 가능한 한 빨리 시신을 바라나시로 운구하려 한다. 시신은 흰색 천(남성) 또는 붉은색 천(여성)으로 덮고, 꽃과 향을 뿌려 강가로 운반된다. 운구 행렬에서는 "람 남 사트야 하이(राम नाम सत्य है)"라는 구호를 반복하는데, 이는 "신의 이름은 진리이다"라는 뜻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의미가 담겨 있다.
2) 화장 전 의식
시신이 가트에 도착하면, 강물에 발을 담가 정화하는 의식을 거친다. 이어서 장작을 쌓아 화장 준비를 하는데, 사용되는 장작의 종류에 따라 비용이 달라진다. 가장 비싼 것은 '샌달우드(백단향)'로, 비용이 많이 들지만 향이 좋아 선호된다.
3) 화장 진행
화장 의식은 맏아들이 진행하며, 머리를 삭발한 후 불을 붙인다. 불씨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Eternal Flame)에서 가져오는데, 이 불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다고 전해진다.
4) 유골을 갠지스강에 뿌리는 과정
3~4시간 후 화장이 끝나면 유골을 채취해 갠지스강에 뿌린다. 이 순간이야말로 해탈을 위한 마지막 의식이다.
3. 바라나시 화장 의식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
1) 불가촉천민(도마)들의 역할
힌두교에서 화장을 담당하는 도마(Dom) 계급 은 불가촉천민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대대로 화장터를 관리하며, 화장 비용을 받고 시신을 태우는 일을 한다.
2) 특별한 경우 화장을 하지 않는 사람들
모든 시신이 화장되는 것은 아니다. 성인(구루), 임산부, 뱀에 물린 사람, 천연두로 사망한 사람 등은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에, 화장 대신 돌에 묶어 강물에 가라앉히는 방식을 취한다.
3) 여행자가 목격하는 죽음의 문화
바라나시를 방문한 많은 여행자는 화장터에서 죽음과 삶의 공존을 직접 경험한다. 그러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으며, 의식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죽음이 끝이 아닌 바라나시의 철학
바라나시에서 갠지스강 화장 의식은 단순한 장례가 아니라 영혼이 해탈에 이르는 과정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죽음을 두려움과 슬픔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바라나시에서는 죽음을 자연스러운 순환의 일부로 여긴다. 이 신비로운 도시에서는 죽음마저도 삶의 일부 가 된다. 바라나시를 방문한다면, 이곳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생과 사의 교차점을 직접 체험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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